“사실 조금 걱정이 되긴 해요. 지금까지는 제가 양보하고 조금만 더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내 왔는데, 언젠가부터는 그게 불가능해지는 거잖아요. 물러서면 물러설수록, 나뿐만 아니라 아랫사람들에게도 짐이 되는 거니까. 용기를 내서 싫은 소리도 할 수 있어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냉정해질 수도 있어야 하는데, 일이 더욱 많아 지는 것 보다 천성적으로 그런 걸 잘 못하겠네요.”

 

2년 전의 어느 겨울 날 차에 앉아 함께 코코아를 마시며 그가 내게 건넨 이야기였다. 1년만에 다시 찾아온 출장. 오밤중에 차를 꽁꽁 얼리고 에어컨을 최대로 켠 뒤 우리는 눈이 덮인 트랙을 달렸다. 완전히 얼어붙어 성에로 가득한 유리창에 전방이 보일 리가 없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창문을 전부 열고 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로 악셀을 밟는다. 클러스터의 온도는 화씨 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온도 시험이라는 것이 항상 그랬다. 더운 날에는 더 덥게 만들고, 추운 날에는 더 춥게 만들어 그 누구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상정하여 대비를 해야 한다. 속도가 빠르게 붙자 예상보다 훨씬 매서운 눈바람에 우리는 몇 분만에 거의 녹초가 된다. 나름대로 오랜 시간 이 업계에서 일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때다.

 

세상은 생각만큼 드라마 같지 않았다. 대다수의 극단적 상황은 누군가의 악의도, 궁지에 몰린 선택의 결과도 분명 아니었다. 이 또한 강요 받은 것이 아닌 우리 중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다듬어 진 결과물이었을 테다. 만성적인 불안함과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 짧아져만 가는 개발 기간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 보니 결국엔 다들 비슷한 결론으로 수렴한다. 그러게, 차라리 명확하게 나쁜 놈이 저 우주 너머에 존재한다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건강이 날로 안 좋아지는 팀장님은 개발 기간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런 극한지 업무를 유독 힘들어하셨다. 자잘한 몸살과 날이 갈수록 조금씩 늘어나는 약 봉지들을 보며 굳이 안 나오셔도 괜찮다고, 제가 잘 얘기할 테니 숙소에서 쉬시고 본사랑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들만 신경 써 주시라고 얘기를 드렸다. 심지어 고객사의 책임자였던 그 또한 진심으로 말렸음에도, 팀장님은 한사코 아픈 몸을 이끌고 현장으로 나왔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 조금 더 강하게 말리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될 때가 있다.

 

 

 

팀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은 프로젝트가 거의 끝날 무렵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눈을 뜨니 부재중 전화가 열 두통이 찍혀 있었다. 부서 내에서 개인적으로 만든 단톡방, 문자, 그 외 내가 회사 사람들과 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매체에서도 알림이 몇십 개 단위로 찍혀 있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우리와 일을 하던 분의 부고 메시지를, 그것도 본인의 이름으로 전달 된 링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현실감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무기력함에 잠식되어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끝도 없이 가라 앉는 기분. 며칠째 두 시가 넘어서 잠에 들고 다섯 시쯤 이유 없이 깨어나지만 이를 슬픔이라 정의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다들 비슷하다고 했다. 그저 조금 길게 휴가를 쓰셨는데, 공항에서 문득 엄청난 영감을 받고 그대로 자신의 꿈을 찾아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떠나신 게 틀림없다고. 모 지방에서 유명한 땅부자이셨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며, 어떻게든 엉망진창으로 우리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나는 내 바로 뒤에 있는 그의 자리를 여전히 바라보지 못한다.

 

시스템이라는 것은 참 합리적이면서도 냉정하다.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 팀장님의 후임으로 누구를 올려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 사양 산업은 지원자가 많지 않다. 또한 언제 사라질 지 모르기 때문에 인원의 변화를 최대한 줄인다. 잘 뽑지도 않지만, 구조조정도 극히 드물며, 시간에 따른 자연 감소분이 이를 대신한다. 때문에 모두가 두세 개의 프로젝트에 물리고 물려 있어 유연한 배치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때문에 팀장님 바로 아래 있던 내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됐다. 마냥 못 한다는 대답보다 조금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가장 실무를 많이 하는 인원을 매니저로 돌리면, 그 사람이 하던 일은 누가 이어받을 것이냐고. 이게 정말 물리적으로 가능하다 생각하시냐고.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쉽게 하지 못한다.

 

 

 

미시간주의 트랙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대답했다. 제일 못하는 게 마음에도 없는 듣기 좋은 소리 하는 거라고. 온전히 표현하는 법을 몰라 사회화된 수사를 외우고, 조금 더 양보하고 희생하는 방향으로 나의 진심을 어떻게든 표현했는데, 계산되고 그 목적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남을 신경 쓰는 척 하는 언행이 강제되는 상황을 마주하면 참 막막할 것 같다고. 애초에 표현도 못하는 사람이 진심까지 없는데. 그저 그 순간이 우리 모두에게 먼 훗날이기를 바란다며 나름대로 훈훈한 대화를 마무리하고 숙소에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바쁜 와중에도 돌아가는 특유의 느낌을 다들 감지했나 보다. 실장급에서 ‘면담’이라는 주제로 짧은 회의가 잡혔다. 다들 지금 상태가 어떤지, 팀장님을 어떻게 보내 드려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조금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나니 또 의외로 괜찮아진 부분이 있었다. 실장님은 그래도 얘기를 좀 하고 나니 표정들이 괜찮아 진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지만,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데. 두 분이 오랜 시간 같이 일을 해 왔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 역시 답답하고 안 되는 상황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됐을 것이다.

 

꽤나 큰 동정표를 받을 때 이를 이용해 팀에 챙길 수 있는 건 최대한 챙겨야 한다는 쓰레기 같은 생각 또한 조금씩 기어올라온다. 분위기를 타고 조금은 터무니 없는 요청사항을 이것저것 던져 본다. 며칠이 지나자 승인 처리가 되는 것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팀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이 배정되고, 지원 받을 수 있는 항목들을 검토해 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어, 나 의외로 잘 하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야. 앞으로 이렇게만 하면 되는 거야.

 

 

 

살아가며 사람에게 정을 주지 않기 위해 꽤나 많은 노력을 했다. 없는 마음에 어떻게든 최선을 다 해보려는 이유에 대해 ‘후회가 없으면 떠날 때 아무런 미련도 감정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 라고 당당하게 말했었다. 사실은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완전한 타인에게 사랑이나 헌신을 온전히 베푸는 것은 불가능하며, 설령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는 점을. 컴퓨터로 설정된 임계 값 마냥 ‘나의 베풂이 이 수치를 넘어갔으니 이진 변수 값 1로 바꾸고 이젠 끝.’ 이라는 상황은 우리에게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 미움과 증오, 또는 포기로 바뀌는 것을 전제로 한다. 모든 관계가 부정적인 형태로 끝나는 것 만은 아니다. 장례식장이 가득 차 세개의 방을 추가로 빌려도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선량하고 따듯한 사람이 그 대상이라면, 처음부터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때문일까, 나도 사랑, 조금 넓게 보면 인간관계 대한 미친 로망이 하나 있다. 오랜 시간 쌓아 온 감정이 어찌 되었든, 우리가 영원히 떠나는 순간이 찾아올 땐 이유 없이 서로를 미워했으면 좋겠다고. 언젠가 내가 죽게 되면 모두가 마치 마법에 걸린 것 마냥 꼴 좋다고, 잘 떠났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후련한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그렇다면, 적어도 오랜 시간 나를 따듯하게 바라보던 사람들이 아픔으로 고통받지는 않을 테니까.

 

늦은 밤, 나는 트랙 한 가운데서 키 높이만큼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다. 한참을 쓸어 내니 눈에 묻혀 있던 차의 형태가 드러난다. 얼어붙은 차에 시동을 걸어 히터를 최대로 켠다. 얼음 덩어리를 녹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천장과 트렁크 쪽에 쌓인 것들만 마저 털어내면 된다. 그 때, 누군가 운전석 쪽으로 다가오더니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간다. 황급히 반대편으로 들어가 그 동안 잘 지내셨냐고, 요즘 건강은 어떠시냐고 반갑에 인사를 건네는 내게, 팀장님은 그저 평소와 같은 온화한 미소와 함께 말 없이 내게 악수를 건넨다. 우리의 손이 맞닿는 순간, 나는 꿈에서 깬다. 시계는 새벽 세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