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한달쯤 전으로 올라간다. 여느 날처럼 멍한 눈으로 출근을 해 자리 앉아 노트북을 연결하고 세팅을 마무리한다. 반짝이는 불빛에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회사 전화기가 깜빡이고 있었다. 부재중 전화였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재택근무로 인해 자리를 비울 때가 많고, 때문에 대부분의 연락은 핸드폰이나 팀즈 등의 온라인 망으로 대체되었다. 사실상 거의 쓰지 않는 전화였다. 목록을 확인해보니 모두 여섯 통이 와 있었고 모두 발신인이 서로 달랐다. 그런데, 이 중 내가 알고 있는 번호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와 같이 불특정 다수가 나를 찾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다. 필드 문제가 발생했거나, 어제 전달한 소프트웨어에 중대한 이상이 있거나,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상한 부서에 내 번호가 팔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본능적인 불안함을 느꼈지만 정 급한 일이면 나중에 다시 찾겠지, 라는 판단 하에 굳이 뭔가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바쁜 와중에 ‘누구십니까’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여섯 통씩이나 일일이 전화를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다행히도 아무런 추가 연락 없이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나갔고, 정체불명의 번호들은 나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혀졌다.

 

 

본격적인 문제는 일 주일쯤 뒤에 발생하였다. 이틀 간의 재택근무 이후 자리로 돌아오니 이번엔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이 찍혀 있었다. 저번에 왔던 여섯 통과는 전혀 다른 번호들이었다. 심지어 가장 최근의 기록은 오늘 새벽 다섯 시였다. 교대 근무 없는 사무직 직원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 시간이었다. 슬슬 어딘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시 한 번 리스트를 확인해 봤다. 수십 통의 전화가 모두 다른 사람은 아니었고, 2~3번 정도 반복적으로 온 것들이 꽤나 존재했다. 그 중 한 명의 번호를 눌러 조심스럽게 다시 연락을 해 봤지만, 연결은 되지 않았다. 다른 번호로 한 번 더 시도했지만 마찬가지다. 어딘가 찜찜한 느낌을 뒤로 하고 일단 느긋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이틀 동안 수십 통이 왔는데, 그러면 적어도 오늘 한 통 정도는 받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날 역시 전화기는 조용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은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내가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침묵을 지키던 전화가, 재택근무나 출장, 심지어 출근을 한 날에도 차량 시험 등으로 인해 자리를 비우고 있을 때만 요란하게 울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별의 별 생각이 안 들래야 안들 수가 없었다. 몇 주에 걸쳐 끝없는 소음에 시달렸을 맞은편 자리 차장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가 자리를 비울 때만 쏟아져 들어오는 전화들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들을 했다. 통신장애 설, 보이스피싱 설, 빅브라더 설, 나도 모르는 빚 보증 설 등 온갖 가능성들이 나왔지만 전부 우스갯소리로 끝날 뿐이었다.

 

 

어쨌든 내 핸드폰으로 직접 오는 전화들이 아니었기에 개인 신변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근 3주간 백 통은 훨씬 넘게 온 것 같은데, 언젠가는 직접 받을 수 있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 또한 있었다.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 차장님은 자기가 대신 받아 주겠다고 했지만, 혹시 업무에 심각한 지장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일단은 기다려 달라 요청했다. 왠지 직접 받아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운명의 날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오전에 해야 할 일을 대충 정리하고 커피를 타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리문을 열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안쪽에서 희미한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평소 같으면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갔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빠르게 뛰어 돌아가니 역시나 내 자리였다. 수화기를 들고 두근거림과 함께 언제나처럼의 인사 멘트를 건네자 중년 여성과 할머니의 중간쯤 되는, 어딘가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TEC 송하명입니다.”

“여보세요? 저희 손주가 이번에 백신을 맞았는데요.”

“……네?”

“그러니까, 저희 손주가 그저께 백신을 맞았는데…”

 

뜬금없이 손주가 백신을 맞았다는 말과 함께 어르신들 특유의 속사포 같은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중간에 몇 차례 전화를 잘못 거셨다는 말을 어떻게든 드리려고 했지만, 나는 적당한 타이밍에 끼어 들어 남의 말을 적절히 끊는 능력이 매우 부족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문장의 연속에 나는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할머니의 페이스에 말려든 채 이야기를 계속 듣게 되었다.

 

당황한 목소리는 어딘가 상기되어 보였고, 수 없이 많은 동어반복과 의식의 흐름식 전개로 인해 전후관계 파악을 하기 어려웠다.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랬다. 백신을 접종한 손자가 어제 밤부터 갑자기 심장 통증과 호흡 곤란을 호소했고 이로 인해 잠을 못 잘 정도로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 밤을 새워 고통에 시달리다 이제 겨우 기절하듯 앉은 채로 잠이 들었는데, 병원(아마 질병관리청이 아닌가 싶다)에 새벽부터 연락을 했지만 몇 시간째 전화를 받지 않거나 통화중이었다고 한다. 한참을 걸려 어떻게 연결이 된 담당자는 보건소로 다시 연락을 해 보라며 지금 이 번호를 알려 줬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3주간 있었던 모든 일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 그렇구나. 내 사무실 번호가 시 관할 보건소로 잘못 전달된 것이었구나. 하지만 개인적인 궁금증의 해소 여부와는 별개로 저 간절한 목소리를 사무적으로 내칠만큼 매몰찬 사람은 되지 못했나 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몇 시간은 걸려 연락이 닿은 사람이다. 거기에 대고 전화 잘못 거셨으니 다시 알아보시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전달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운이 좋지 않다면 분명 몇 시간이고 기약 없는 전화를 붙든 채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을 다시 반복해야 할 것이다.

 

뜬금없지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여긴 보건소가 아니라 자동차회사고, 백신 접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이다. 아무래도 병원 쪽에서 전화번호를 잘못 알려 주신 것 같다. 일단은 제가 확인을 한 번 해보고 다시 연락 드리겠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 고 전달했다. ‘아이고 선생님 알겠습니다.’ 라는 90년대 신파극에서나 나올 법한 멘트를 뒤로 한 뒤 수화기를 내렸다.

 

인터넷에서 이천시 보건소를 검색해 본다. 역시나 특별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이번엔 뭔 또 의료 상담을 하고 있냐며 이 상황을 구경하던 차장님은 갑자기 보건소 말고 시청 사이트 조직도를 검색해 보라고 하셨다. 시에서 운영하는 모든 부서의 내선 번호가 전부 적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5분 정도를 함께 찾은 결과 감염병 관리과에서 내 번호와 가운데 딱 한 자리만 다른 번호가 발견되었다. 이번엔 보건소로 연락해 지금의 상황, 그동안 잘못 걸려온 수 없이 많은 전화들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뭔가 확인을 하는 타자 소리가 들리더니 착오가 맞고 내부적으로 정보가 잘못 전달된 것 같다며 죄송하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정황 상 모든 게 확실해지자 다시 어르신께 전화를 걸어 바뀐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 사실, 건강 상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할머니는 뭐가 그리도 고마우셨는지 연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를 반복하며 전화를 끊었다.

 

 

문득 작년 가을쯤의 일이 생각났다. 길을 가다가 급작스럽게 찾아온 격한 통증과 호흡곤란에 심장을 붙잡고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10분을 방황하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깜짝 놀라 급하게 달려 나온 아버지의 차를 타고 우리는 서울 시내를 방황했다. 저녁 시간이라 응급실만이 유일한 선택지였지만 이런 시국에 병실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었고, 때문에 찾아간 모든 병원들은 기본적으로 여덟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복기할 수는 없다. 막연한 기억 속에 아버지는 운전 중에 차를 멈추고 근처의 대형 병원들을 확인하며 응급센터에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대부분이 연락조차 되지 않고, 어쩌다 받은 곳들 또한 자리가 없다고 했다. 아버지 특유의 덤덤한 목소리가 어딘가 절박한 듯한 톤으로 바뀌는 과정은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다.

 

다행히도 일시적인 현상인지 나의 증상은 시간 단위로 자연스럽게 호전되었고, 마침 구리 근처의 한 대형 병원을 찾아 한 시간 정도의 기다림 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거의 모든 부작용자들이 그렇듯 의학적인 이상은 없었다. 이후 다섯 시간 정도가 지나자 내 몸은 완전히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와 언제 그랬냐는 듯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

 

 

지금이야 해프닝처럼 이야기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옆 자리에 탄 자식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함께 다급하게 서울 시내를 방황하며 병원을 찾아 헤매는 아버지의 심정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데자뷰를 봤을 지도 모르겠다. 심장을 부여잡고 숨을 쉴 수 없다며 밤새 고통스러워 하는 손자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그리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수 있다는 사람의 존재에 무슨 감정을 느끼셨을까. 나의 ‘네?’ 라는 짧은 반문 이후 속사포처럼 쏟아진 이야기들은 분명 오랜 시간 응어리 져 있던 것들이 터져 나오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저,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절망과 희망의 간극을 어떻게든 머리로라도 이해하려 노력해 볼 뿐일 것이다.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으므로 사무실 전화를 핸드폰 번호에 연동시켜 일정 시간 후 착신전환이 되도록 해 두었다. 뭔가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오늘과 같은 방황은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후 출근 여부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전화를 직접 받을 수 있었고, 정말 마법과도 같이 내가 자리에 앉아 있을 때도 전화들은 마구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까지 그거 다 받아 줄거냐는 맞은 편 차장님의 잔소리는 덤이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건, 이후로 내게 오는 모든 전화들은 코로나 검사와 관련된 문의라는 점이다. 그 날의 일과 같이 한시가 급한 상황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시청 사이트에 들어가 다시 찾아보니 원래 전화를 받아야 할 분이 담당하는 업무는 선별진료소 관리였다. 즉, 백신 부작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검사 장소의 위치를 알려주시는 분이었다. 그러니 북새통을 이루는 다른 부서들과는 달리 내가 전화를 하면 바로 받았던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내가 자리에 없을 때 전화가 몰려왔던 것들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였고, 3주 간의 숨바꼭질 끝에 처음으로 연락이 닿은 사람은 하필이면 잘못된 정보를 전달받은 분이라는 얘기가 된다. 이를 확률로 계산하면 얼마 정도가 될까. 이성과 합리에 높은 가치를 두고, 수치에 목숨을 거는 공학분야에 몸을 담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은 산술적인 통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다시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단편적 정보 전달의 반복에 지쳐가며 일부러 받지 않는 전화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반면 모르는 번호로부터의 연락은 빠른 속도로 줄었다. 시청 내부적으로 정정된 번호가 다시 공유되고 있기 때문일테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동 회신 거절 문자를 보내는 것에 슬슬 익숙해질무렵, 나의 사무실 전화기는 더 이상 울리지 않게 되었다.

 

 

- 사실 비교

1. 차장님 일화의 경우 서로 다른 세 분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서 기술

2. 전화를 받은 채로 잠깐만 기다려 보시라며 시청 사이트 확인을 했었고, 감염병 관리과에 정정 요청은 나중의 이야기

3. 원래부터 일정 시간 후 착신 전환 되도록 자동 설정이 되어 있는데, 시끄럽다며 누가 즉시 착신 전환으로 변경해 둠